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워마드 성체 훼손 사건 (문단 편집) === 비판 === 명분이 있다는 관점에서 정리하면, 사건 당사자는 명분상 목적으로 '[[가톨릭]]이 여성 인권을 탄압하는 종교라서 경고를 주고 싶었다는 취지로 성체 훼손을 한 것이다'라고 말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http://www.ekn.kr/news/article_lab.html?no=373492|정리 기사]]), [[한국 가톨릭]] 신학학회에서 [[한국 천주교]]는 이미 70년대와 80년대에 노동 인권운동과 여성노동자 권익 수호에 활발한 활동을 보였으며 여성 [[수도자]](수녀)들의 복지활동이 사회 발전의 원동력이 되었다는 것을 역사적으로 발견하였다고 공표했었다. 가령 [[가톨릭]]에 대한 신성모독을 취미생활급으로 해대던 [[마돈나(가수)|마돈나]]의 경우를 보자. 마돈나의 신성모독으로 논란이 된 퍼포먼스는 2개인데, 첫째는 'Like A Prayer' 뮤직비디오에서 흑인 [[예수]]와의 [[성관계]] 묘사, 2번째는 2006년의 'Confessions' 투어에서 [[면류관#s-4|가시관]]을 쓰고 [[십자가]]에 매달려 노래를 부른 것이다. 그러나 마돈나의 신성모독은 (물론 [[노이즈 마케팅]] 수단이기도 했지만) 보다 고차원적인 가치를 의도적으로 겨냥하고 있다. 예를 들어 Like a Prayer이 서구에서 논란이 되었을 때 많은 보수 기독교인들이 분노했다. 그런데 이들 중 상당수는 예수와의 성행위 묘사보다도 오히려 예수가 흑인으로 묘사된다는 것에 충격을 받아 마돈나와 그녀의 뮤직비디오를 비난했다. 예수가 흑인이든 백인이든 그의 세계사적 가치나 종교적 가치가 평가절하될 수 없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흑인 예수를 받아들이지 못해 난리를 쳤다. 실제로 이 비디오는 백인 여성을 구하려다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는 흑인의 모습을 묘사하는 등 그 당시의 사회적 이슈를 정확히 조롱하고 있었지만 당시의 보수 기독교 진영에서는 오직 흑인 예수, 신성모독이라는 키워드에 집착했고 이는 역설적으로 그 당시 보수 기독교 진영이 얼마나 사회 문제에 무감각한가를 드러내는 해프닝이 되었다. 또, [[십자가]]에 매달려 [[예수]] 코스프레를 하는 마돈나가 노래를 부를 때, 스크린에서는 [[아프리카]]의 [[에이즈]] [[고아]]들을 돕기 위한 자선단체의 홍보가 흘러나온다. 즉 이 퍼포먼스는 '누구라도 [[예수]]처럼 남을 도울 수 있다'는 의미로 충격적인 이미지를 통해 에이즈 고아 돕기 캠페인을 전세계적으로 알리기 위한 것이다. 덕분에 [[러시아 정교회]] 마피아들에게서 살인 협박을 받았을 때도 [[마돈나]]는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고, 일부 꽉 막힌 근본주의자들을 빼면 신자들 또한 지지까지는 아니더라도 '신성모독' 퍼포먼스의 의의를 이해할 수는 있었다. 이 사건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러나 과연 성체에 욕설을 하고 불태우고 사진을 찍어 인터넷에 올리는 것에 [[관심병]] 외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 동안 [[가톨릭]]의 신앙적, 윤리적 보수성을 강하게 비판해오던 해외의 페미니즘/인권 운동 세력에서도 이런 전례는 없었다.[* 다만 [[우크라이나]]의 워마드라고도 할 수 있는 '페멘' 회원들이 [[십자가]]를 전기톱으로 잘라 넘어뜨리고 도망간 사례가 있긴 하다. 물론 이 경우도 매우 많은 비난을 받고 행위자들은 검거된 바 있다.] 굳이 그래도 아주 조금이나마 비슷한 사례를 찾자면, 천주교의 강경한 낙태 반대에 항의하는 의미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사진을 방송에서 찢은 [[시네이드 오코너]]의 사례를 들 수 있겠으나, 이는 아일랜드의 어린 소녀들이 영국인들과 가톨릭의 조직적인 집단 성폭행을 당해 원치 않는 임신을 하여 위험한 상황에 처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집단강간을 자행한 가톨릭에서는 '''어떠한 이유로든 낙태는 안 된다'''고 주장하여 분노한 것이었다. 훗날 [[시네이드 오코너]]는 그 사건에 대해 사과했다. 물론, 천주교의 강경한 낙태 반대 방침은 이처럼 논란이 될 여지는 있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80~90년대에 대한민국에서 암암리에 만연했던 [[80-90년대의 여아 낙태 문제|여아 낙태]]를 조금이나마 줄였다. 가톨릭 언론에서 낙태를 반대하는 대표적인 이유로 내세운 것이 바로 성차별적인 인습에서 비롯된 태아 성감별과 그에 따른 여아 낙태였다. 당시 가톨릭계에서는 "여성도 똑같이 소중한 생명"이라면서, [[남아 선호 사상]]과 여아 낙태를 그 어느 곳보다도 거세게 비판했다. 비록, 과거에는 [[마녀사냥]] 같은 범죄를 저질렀던 천주교이지만, 적어도 [[한국 천주교]]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이다. 오히려 이처럼 강경한 방침이 있기에, [[미혼모]] 쉼터와 부모에게 버림받은 고아를 키워 주는 [[보육원]]을 적극 운영하고 있다. 또한 낙태 여성 뿐 아니라, 낙태를 주선하는 남성에게도 똑같이 책임과 죄가 있음을 가르치고 있다. 천주교의 낙태 반대 방침을 비판하는 운동 세력도 대부분 이러한 천주교 측의 노력 자체는 인정하고, 단지 '근본적으로 낙태 자체를 허용해야지 이러한 노력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정도의 논지를 내세우는 편이다. 핵심교리의 전통성을 지키기 위해 여성 사제 문제와 낙태, 안락사 등에 있어선 타협없는 보수성을 유지하고 있지만, [[프란치스코 교황]] 대에 들어서 [[가톨릭]]은 교리적으로 논란이 크지 않을 부분에 대해서는 여성들의 의견을 존중하여 여성 문제에 유화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낙태는 생명을 해하는 점에서 죄에 해당하지만, [[http://www.cpbc.co.kr/CMS/news/view_body.php?cid=590689&path=201509|용서받을 수 있다는 해석을 내놓았다.]] 전례 예식 규정을 개정하여 [[주님 만찬 성목요일]][* [[주님 부활 대축일]] 3일 전의 목요일. [[파스카 성삼일]] 중 [[미사|성체성사]]가 제정됨을 기념하는 날. [[요한 복음서]]에 기록된 세족례를 재현한다.]의 세족례에 여성이 참여[* [[성경]] 기록에 따라 [[예수]]가 남성 제자에게 행하였다고 여겼기 때문에 공식적으로는 남성에게만 집전해 왔다.]하는 것을 [[http://www.cpbc.co.kr/CMS/news/view_body.php?cid=615763&path=201601|공식적으로 허용하였다.]] 또한, 남성 사도들보다 먼저 예수의 부활을 목격하고 믿은 여성인 [[마리아 막달레나]]의 기념일([[7월 22일]])을 축일로 격상시켰다. [[예수]]는 [[간음하다 잡힌 여인]]에서도 알 수 있듯이 오히려 잘못을 저지른 여성을 보호했으며, 당대 천대받던 여성들에게 더없이 친절[* 단순히 감싸주거나 마냥 친절하게 대한 것이 아니라, 잘못에 대해서는 따끔히 지적하며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말라는 말도 했다.]했고, 여성들을 존중했다. [[복음서]]의 기록에 따르면 [[부활]]한 [[예수]]를 가장 먼저 만난 이가 그의 다른 제자들도 아닌 [[마리아 막달레나]]였을 정도. 심지어 당시에는 문둥병보다 조금 나은 수준으로 심하게 천대받던 혈루증을 앓던 여성에게도 사랑과 친절로 대했다.[* [[유대교]]의 율법에 따르면, 몸에서 흘린 피는 지극히 불결한 것으로 간주되었고 혈루증은 몸에서 계속해서 피를 흘리는 상태이므로, 혈루증 환자는 천대받았다. 모세 5경(토라)에서 율법을 기록한 율법서인 [[레위기]]에 자세히 나와 있다.] 그녀가 몰래 다가와 예수의 옷자락을 만져 치유받았을 때도, 예수는 그녀를 전혀 질책하지 않고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라고 격려하고 돌려보냈다. 따라서 예수의 가르침을 사모하며 그를 극진히 따르는 여성들이 많았다. 즉 여성혐오를 반대한다면서 [[예수]]를 모독하는 것은 제대로 된 근거가 없는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